지금 이순간 학위과정을 힘들게 하고 있는 학생에게









윤지원 교수

 

 

 제가 학과로부터 KISS LETTER에 기고문을 작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에 주제선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조금은 우울한 경험이 지금 이순간 학업과 연구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혹여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저의 박사과정 때의 일화를 적고자 합니다.

 

 저는 국내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후에 2004 10월부터 전자공학분야의 통신 및 신호처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교수님들 밑에서 좋은 동기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전산학을 전공하였던 저는 해당 연구실 입학생들에게 기본지식으로 통하는 내용들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기에 초반부터 학업수행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입학초기에 기초통계학과 Digital Signal Processing 기본서 두 권을 교수님께 들고 가서는어떤 것부터 공부하면 되나요?”라고 여쭤봤을 때이건 다 알고 왔어야 하는데…”라는 교수님의 짧은 멘트와 함께 몹시 당황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본기 부족으로 인한 난항이 박사과정 중에 해결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문제가 박사과정 내내 해결은 안되었습니다. 실력미달을 성실성으로 메워보려고 365일중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해가 안가는 수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책들을 부여잡고 참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은 학위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내내 뜻대로 채워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의 이러한 발버둥치는 모습을 안타깝게 보셨는지 연구실내 Dr Sumeetpal Singh 교수님께서 어느 날 따로 절 부르시더니 저와의 공동연구를 제안하셨습니다. 랑카스터대학의 Prof. Peter Diggle이라는 통계학의 유명 노교수님이 쓰신 과거 논문에 쓰여 있는 난제를 언급하시며 우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이미 좋은 팀을 구성했으니 같이 연구해 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매번 남들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저에게는 그야말로 기회였습니다. 놀랍게도 해당 팀의 구성원 중에는 젊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프랑스 ENSAE대학의 Prof. Nicholas Chopin과 이미 석학 반열에 오른 노르웨이의 Prof. Havard Rue가 있었습니다. 매번 저로 하여금 논문을 읽으면서 감탄과 탄성을 지르게 하던 그들이었습니다. 사실상의 저를 제외한 세 분의 교수님들은 최고의 이론가들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드림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림팀은 구현을 맡았던라는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1년여 간 세 명의 교수님들의 지도하에 그 난제를 풀려고 이리저리 애를 썼지만 매번 실패를 맛봐야만 했습니다. 커피는 더 많이 마셨고 말수는 더 줄어들었고 나날이 자신감은 더 사라져 갔습니다. 1년여 간 계속적으로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외국에 있던 교수님들도 저에게 미안하셨는지 연락이 끊어지고 이 난제를 정말 풀고 싶어하셨던 Singh 교수님은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핀잔의 빈도가 조금씩 늘어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언제부턴가 Singh 교수님께서 멀리서 연구실로 오실 때 그의 걸음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곤 했습니다. 결국 노이로제와 신경쇠약 같은 초기 증상까지 갖게 되었고 그 당시 방문교수로 오셨던 가천의대 교수님께 진단까지 받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년 넘게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그 연구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실패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우선은 교수님께서 실패한 내용은 학위논문에 쓰지 말자고 하시기에 저의 1년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저를 힘들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제 바로 한 기수 위 선배와 한 기수 아래 후배는 저와 달리 그들이 수행한 과제들이 대박을 쳐서 연구실 내 포닥과 연구교수들이 항상 그들 주변에 있었고 이곳저곳으로 발표를 하러 다니기에 바쁘더니 결국 졸업과 동시에 미국과 영국의 유명대학의 교수진으로 바로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승승장구와 달리 전 남은 학위과정마저도 막막했습니다.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빨리 박사과정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졌습니다. 그래서 대충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냥 떠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건 이론 파트가 사라진 미완성의 학위 논문이 전부였고 그래서인지 박사학위를 마치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해외에서 3~4년 가량을 떠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한데 통장엔 잔고도 없고 가방 끈은 쓸데없이 길다고 국내 회사에선 괜시리 꺼리고 집에선 아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부모님은 말씀도 못하고 내내 한숨만 쉬시고..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1년여 간 난제를 풀고자 낑낑대면서 고민했던 다양한 방법론들이 의외의 곳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3년이 지나서 모 기업연구소에서 도시 내 교통분야에 대한 기술을 만들 때 저에게 좌절감을 주던 그 기술들이 어느덧 핵심기술로 이용되는 것을 확인을 할 수 있었고, 저의 실패 경험이 팀에 아주 큰 이득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 나름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양자이론 문제를 풀던 이론물리학자의 문제를 풀어 주기도 하고, 런던대 교수가 몇 년간 풀지 못하던 게임이론의 Equilibrium을 증명하는데 제가 도움을 주고 감사인사까지 받으면서 그때 괴롭게 공부하던 것들이 저만의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결론에 기반해서 과거를 평가하니 과거의 실패조차도 미화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지금 석사나 박사과정 중에 연구 주제의 문제로, 아니면 지도교수님이나 연구실 선후배간의 인간관계 문제로,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다면 아래의 몇 가지를 감히 말해주고 싶네요. (물론 언급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 안타깝게도 세상은 불공평하고 지금의 어려움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2.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좋은 날만 있을 수도 없고, 또한 나쁜 날만 있을 수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3. 또한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는 자신만의 자산으로 돌아옵니다. (, 꽤 오래 걸릴 수는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이순간, 뜻대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아 난항에 부딪쳐 있고 여러 가지로 지쳐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을 조금이라도 주면 어떨까 하는 맘에 이 글을 써봅니다.